부동산 정보/경매 정보

일상 가사대리의 한계

복돌이-박 창 훈 2008. 1. 8. 08:40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부동산이 매각되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근래 들어 소유자가 명확히 존재하는 토지에까지 사기행각을 벌이는 대담한 범죄는 많이 줄어들었다. 국가 등기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으나, 국민들이 부동산 소유관계에 대한 지식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부해졌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이다.

근래 문제가 되고 있는 토지분쟁은 대부분 가까이 있는 사람에 의한 범죄가 더욱 심각하다고 보여진다(물론 이를 범죄로 볼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특히 이혼이 급증하면서 배우자 일방에 의한 일방적인 재산매각행위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유형이 이혼을 앞둔 부부 중 일방이 몰래 거주하고 있는 집을 팔아버리고 그 매각대금을 은닉해 버리는 경우이다. 부동산의 경우 등기에 의하여 공시되므로 그 은닉이 쉽지 않은 반면 현금의 경우 얼마든지 은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동산 거래의 관행상 남편 혹은 아내 명의로 등기되어 있는 부동산이더라도 호적등본 등을 제시하여 부부관계를 입증하면 부동산매매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이러한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부동산을 일방적으로 매각당한 채 매각대금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한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부동산 매수인이 부동산을 명도해달라고 찾아오기 전까지는 피해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매수인이 찾아오더라도 보통 명도를 하지 않고 버티기 마련인데, 결국 이러한 사건은 매수인에 의하여 명도소송을 당하는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기 십상이다.

원래 부부 사이는 민법 제827조 제1항에 따른 ‘일상가사대리권’이 인정된다. 일상적인 가사문제에 관하여는 부부가 서로를 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의 월급으로 아내가 식료품을 구입한 경우,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허락없이 자신의 월급을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식료품 구입을 취소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일상가사’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의 경우 이러한 대리권은 부정되게 된다.

부동산과 같은 고가의 재산을 매각하는 행위를 ‘일상적인 가사문제’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남편 몰래 남편 명의의 부동산을 매각한 아내로부터 해당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은 일상가사대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부동산매각행위와 같은 중요한 행위에 대하여는 아무리 부부간이더라도 법적으로는 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부동산의 매각에 관한 별도의 대리권을 수여받아야만 부동산을 유효하게 처분할 수 있게 된다.

어찌됐건 위와 같은 이러한 제소를 당한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내의 부동산 매각행위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과 알지 못한 것에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승소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증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입증을 위하여 배우자 간에 형사고소가 제기되기도 한다. 배우자 몰래 몰래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배우자 명의의 문서가 위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민형사상 절차를 모두 거치더라도 자신의 부동산을 되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옛 어르신들은 ‘인감도장’ 이나 ‘땅문서’ 등을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히 간수하며,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를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사이버 시대에 이러한 조심성은 간혹 소심함으로 비취질 수도 있지만, 아직도 우리 부동산 거래 관행에서 인감이나 등기권리증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조심성은 현재에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법무법인 TLBS 김형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