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 1995년 경부운하 검토
● 이명박 측근, “1996년 YS 견제로 무산”
● 충주댐, 충주호, 국립공원 통과 안 해
● 괴산 박달산-문경 조령산 쌍방향 터널 뚫는다
● 임시 갱도공법으로 4년내 완공
● 서울-부산 40시간, 고속 바지선의 비밀
● 구포대교 등 17개 재가설, 달천교 등 13개 철거
● 대구 갈산동·화원읍, 선착장·물류단지 유력
● 총생산 파급효과 연 1조4229억원
● ‘타당성 없다’ 정부 보고서 자문교수들 “연구 참여한 적 없다”
● 환경단체 “백두대간 두 동강…생태계 교란 불 보듯”
● 이명박 측근, “1996년 YS 견제로 무산”
● 충주댐, 충주호, 국립공원 통과 안 해
● 괴산 박달산-문경 조령산 쌍방향 터널 뚫는다
● 임시 갱도공법으로 4년내 완공
● 서울-부산 40시간, 고속 바지선의 비밀
● 구포대교 등 17개 재가설, 달천교 등 13개 철거
● 대구 갈산동·화원읍, 선착장·물류단지 유력
● 총생산 파급효과 연 1조4229억원
● ‘타당성 없다’ 정부 보고서 자문교수들 “연구 참여한 적 없다”
● 환경단체 “백두대간 두 동강…생태계 교란 불 보듯”
길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사라진다. 그것이 길의 운명이다. 길이 사라지면 그 길에 명운을 걸었던 사람들의 인생, 풍류도 잡풀 속에 묻힌다. 지역경제도 길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고속도로였던 ‘조선 팔대로(八大路)’는 신작로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일제가 러일전쟁을 앞두고 부설한 경부선 철도(1901∼1905)는 부산 동래에서 서울 양재까지 가장 빠른 도보 길이자 과거 보러 가던 길이던 ‘영남대로(嶺南大路)’ 위에 놓여졌다. 낙동강 우안(友岸)을 따라, 또 남한강을 비껴 장호원 들판을 내달리던 영남대로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물길(水路)이다. 조선시대 부산, 경남지역의 조공(朝貢) 배와 소금 배는 낙동강을 거슬러 문경새재 코밑인 상주까지 올라갔다. 낙동강 지류를 따라 경북 내륙 골짜기인 안동으로도 들어갔다. 안동 양반이 바다 생선을 맛볼 수 있던 것도 이 물길 덕분이었다. 서울에서 충주까지는 한강과 남한강 물길을 이용했다. 서울로 가는 조공 배는 달구지로 문경새재를 넘어온 짐을 싣고 남한강의 유속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한강 마포나루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나루에는 주막과 시장이 번성했다.
강의 물길은 바다로도 연결됐다. 충북 충주의 달천강 지류에서 시작한 남한강은 경기도 양평의 팔당 지역에서 북한강과 만난 후 비로소 한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서울을 관통해 경기도 파주까지 한달음에 내뻗은 한강은 임진강과 합쳐지면서 서해와 몸을 섞는다. 강원도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문경, 상주, 구미, 물금을 거쳐 부산지역에서 남해로 연결된다.
러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일제는 경부선 철도 인근의 한강, 남한강, 낙동강 주변 나무를 집중적으로 베어내기 시작한다. 수목 남벌로 토사는 강으로 흘러내렸고, 이후 급속한 산업화로 강변이 파괴되면서 강의 바닥(하상)이 높아져 큰 배가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국도와 지방도가 늘어나면서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한강과 낙동강은 물류이동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다. 사람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도 신식 다리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제1부〉 정치 입김에 좌초된 경부운하
사라진 내륙의 물길을 우리의 기억에서 되살려낸 주인공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성공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이 후보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마무리되어가던 해에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즉 경부운하에 대한 계획을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 사이에 우뚝 솟아 한강과 낙동강을 가로막고 있는 조령 인근 지역에 수로 터널을 뚫어 서울과 부산을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낙동강 상류의 부족한 수량은 충주호에서 받거나 보를 만들어 확보하고, 높아진 하상은 준설해 수심을 확보한다는 안(案)이다. 공사비의 상당 부분은 준설을 통해 얻은 골재를 팔아 충당한다는 것.
이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가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1996년 7월, 15대 국회 본회의에서 제안한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그 한 해 전인 1995년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 내놓은 내륙주운(舟運) 건설론을 원용하는 수준이었다. 이 후보는 서울시장 퇴임 1년 전부터 대선을 향한 정책적 승부수를 띄운 셈. 하지만 이 후보의 주장은 크게 이슈화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운하 자체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후 청계천 복원에 대한 칭찬 여론이 빗발치자 이 후보는 자신의 대통령선거 제1 공약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건설로 확정했다. 지난해 8월17일부터는 3박4일간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가는 정책탐사를 벌이며 지역민과 언론을 대상으로 내륙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계천의 성공(환경단체들은 ‘일부의 성공’ 또는 ‘실패’로 보지만)’은 그에게 10여 년 전 국회의원직 상실과 함께 묻힌 ‘운하의 꿈’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을 불어넣었다.
세종연구원의 제안
9월을 넘어서면서 이 후보의 경부운하는 명칭이 ‘한반도운하’로 바뀐다. 서울-부산뿐 아니라 호남지역과 신의주, 원산 등 북한 전역에 운하를 만들고, 이 모든 운하를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거대 구상을 세운 것이다. 이는 다분히 지역 정서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것으로 현재는 계획으로만 존재할 뿐, 바로 실행하기에는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이 후보측도 “금강과 영산강을 연결하는 호남운하는 몰라도 북한지역 운하에 대해서는 아직 경제적 타당성 조사나 기술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반도운하 중 경부구간(이하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곳은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다. 1995년 4월 이 연구원은 경부운하뿐 아니라 경인, 경안(서울-안양-시화호), 호남운하(한강-금강-영산강)를 비롯, 전국 5대강을 운하로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세종연구원은 ‘물류혁명과 국토개조전략’이라는 테마로 1996년까지 관련 논문과 책을 쏟아냈는데, 여러 운하 중 특히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서울에서 충주댐까지의 한강운하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여 “타당성이 충분하다”는 결과 보고서를 낸 적이 있으나,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내기는 세종연구원이 처음이었다. 당시 세종연구원 주명건 이사장과 연구진이 제시한 경부운하의 얼개는 이렇다.
“운하는 한강 하류인 김포 신곡수중보를 시점으로 한강 본류를 따라 남한강의 팔당댐, 충주댐(충주호)을 경유한 뒤, 조령지역 해발 125m 지점에 뚫릴 길이 20.5km의 터널을 통해 낙동강 상류지점과 연결된다. 충주호에서 터널을 통해 엄청난 물을 공급받은 낙동강은 본류를 따라 하류지점인 낙동강 하구둑까지 총 거리 500.5km 구간을 흘러간다. 운하 가운데 준설공사 구간은 총 237.5km, 절개공사 구간은 166.9km이다. 전체 운하구간에 용수 보조용 댐 7개소와 주운용 댐(수량 확보용) 8개소 등 모두 15개 댐을 건설해야 한다. 터널은 배의 일방통행만 가능하도록 폭 14m, 높이 16m로 뚫는다. 해발고도차 극복과 댐 통과를 위한 갑문은 13개소에 설치한다.
운하의 규모는 바다와 강을 모두 다닐 수 있는 2400t급 바지선이 왕복 통행할 수 있도록 평균 폭 50m와 깊이 5m로 하되 신곡수중보에서 팔당댐까지 54km는 5000t급 바지선이 다닐 수 있도록 폭 50m, 깊이 6m, 구미에서 부산항까지 139.7km는 1만6200t급 바지선이 교행할 수 있도록 폭 100m 깊이 6.5m로 한다. 총 공사비는 8조6700억원.”
경부고속철도(서울-동대구)를 만드는 데 13조원(동대구-부산 구간에는 향후 5조원 이상 투입 예정)을 퍼부은 요즘에는 ‘뭐 그쯤이야’ 하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9조원이면 ‘천문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세종연구원은 “하상 준설을 통해 나오는 골재와 부지 판매 비용 등으로 공사비보다 더 많은 8조7300억원을 얻을 수 있으므로 재정부담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4분의 3이 경부축에 위치하고, 물류비가 국내 총생산의 15.7%인 59조원을 차지하므로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은 교통 혼잡과 환적(換積)시간이라 할 수 있다”며 “경부운하를 만들면 총 물동량의 25%를 운하로 운송할 수 있고, 운하의 운임은 고속도로와 철도에 비해 30% 수준 밖에 되지 않아 엄청난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연구원이 추정한 경부운하의 수송비 절감액은 연간 3조8000억원, 교통혼잡 비용 절감액은 연간 9000억원에 달한다. 세종연구원은 이 밖에도 경기부양과 고용창출, 영남과 경기 남부의 용수 부족난 해소, 통근용 여객선과 관광유람선 도입으로 인한 소득증가, 전쟁 억지력 증가, 대기오염, 수질오염 및 산림골재 채취로 인한 자연훼손 감소 등을 대표적 편익 또는 효과로 꼽았다.
삼성 구상도 수면 아래로
그러나 세종연구원의 경부운하 프로젝트는 이슈화에 실패한다. 그러다 1995년 8월 삼성그룹이 삼성상용차의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부운하 건설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빛을 본다. 당시 삼성그룹은 대구시 성서공단에 삼성상용차 공장을 건설 중이었고, 그에 따른 부품단지를 건립키로 확정한 상태였다.
대구지역 일간지 ‘영남일보’는 1995년 8월30일자 1면 톱 기사에서 “삼성그룹은 수출 물량과 원료의 용이한 수송과 물류비용 절약을 위해선 기존 고속도로로는 곤란하다는 판단하에 과거 수상 수송로로 쓰였던 낙동강에 수로를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사의 제목은 ‘대구를 부산과 연결되는 항구도시로 만든다’였다. 기자는 당시 영남일보 기자로 이 기사를 취재했는데, 삼성그룹이 운하 공사의 타당성 조사 용역을 각 대학 교수팀에 의뢰한 사실을 공개하며 “삼성이 성서공단 삼성상용차 공장과 부품단지 건립을 계기로 성서공단과 쌍용자동차 공장이 들어서는 달성군 구지공단, 위천공단 등 낙동강 공업벨트의 물동량 수송과 최단거리 수출부두의 확보를 위해 순수 민간자본으로 대구와 부산을 직접 연결하는 운하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삼성측은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경부운하 공사계획이 확정될 경우 달성군 구지공단의 쌍용자동차 등 참여희망기업들과 컨소시엄 구성을 구상하는 한편, 공사에 필요한 재원은 민간자본으로 충당한다는 전제 아래 준설작업을 통해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모래 판매 수익금을 운하 공사의 재원으로 삼는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삼성상용차는 김영삼 정부 당시 부산 삼성자동차의 경우처럼 입지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구지역에 자리잡았으나 물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때마침 쌍용자동차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일대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자 삼성은 아예 자신들이 운하를 만들어 돈을 벌 궁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이런 계획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시기를 거치며 2000년 삼성상용차가 문을 닫고, 쌍용자동차 구지공장과 위천공단 건립이 연이어 무산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김혁규 경남도지사(현 열린우리당 의원)는 평소 세종연구원의 경부운하론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영남일보 기사를 읽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안 된다면 한강과 낙동강이 지나가는 광역 지자체가 힘을 합해서라도 경부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구시도 장기 국토개발계획안에 경부운하 건설을 넣을 것을 국토개발원에 다섯 차례나 요구한 바 있다.
이후 대구시와 경남도는 이 문제를 한동안 거론하지 않았다. 세종연구원의 연구원으로 경부운하 논문 작성에 참가한 세종대의 한 교수는 “운하와 관련해서 연구한 학자들은 대부분 삼성이 경부운하를 만들려 했다는 사실을 안다”며 “YS 정권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전한다.
건교부, 수자원공사의 경부운하 폄하
이 후보는 경부운하 건설을 국회 본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시점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96년 7월이다.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던 후보는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경부운하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경부운하건설추진위원회(이하 운하추진위)를 구성하려 했다. 당시 60여 명의 의원으로부터 서명을 받았지만 위원회는 구성되지 못했다. 이 후보측의 한 인사는 ‘신동아’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무려 60여 명의 의원이 운하추진위 결성에 동의했는데도 구성되지 못한 것은 청와대가 막았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YS측은 경부운하 구상이 이슈화하거나 그 구상이 행여 가시화되어 이 후보의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할 것을 우려했다. YS는 대선 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경쟁한 이후 불편한 사이였는데, 그 때문인지 당시 이명박 후보도 경계 대상에 포함됐다.
당시 정부 산하기관에서 뜬금없이 운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불거졌다. 반면 김대중씨는 경부운하를 지지했다. 실제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측에서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이 후보의 운하 구상을 우리가 대선공약으로 쓰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신한국당 소속인 이 후보의 구상을 상대당 후보가 사용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당시 신문을 찾아보면 이런 정황은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다. 1996년 9월2일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 신한국당은 당정 회의를 통해 “경부운하는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주운용 하천수량 확보난, 운하 이용 물동량 부족, 다단계 갑문설치에 따른 기존 제방 공사 필요, 사업비 조달 어려움 등이었다. 또 선박이 20km가 넘는 터널을 통과하는 데 따른 안전 문제와 하천 결빙시 대체 수송수단 확보 문제도 지적됐다.
문제는 건설교통부가 정확한 용역조사를 벌이지 않았고, 이 후보의 제안이 나온 지 한달 보름 만에 이런 결론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점. 건교부가 제시한 문제점에 대해 당시 이명박 의원과 위원회 관련 의원들이 “기술적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또한 신한국당은 경부운하에 대한 반대 당론을 정하면서 소속 의원들과 한 번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 후인 1996년 10월9일 추경석 건교부 장관은 대구·경북권 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경부운하 건설을 강력하게 주장하자 “경부운하 건설을 현재 수자원공사에서 수행 중인 수계연결 계획에 포함시켜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2부〉 수자원공사 조사보고서 왜곡·부실 의혹
1997년 외환위기가 엄습하면서 경부운하라는 말은 그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1998년 1월, 한국수자원공사는 한 권의 용역결과보고서를 ‘조용히’ 내놓았다. ‘지역간 용수수급 불균형 해소방안 조사연구 최종보고서(내륙주운부문)’. 1년여 전 추경석 건교부 장관이 약속한 경부운하에 대한 검토보고서가 그때서야 나온 것이다.
수자원공사가 국토연구원에 5억6000만원의 예산으로 용역을 맡겨 완성한 결과보고서는 하필이면 YS 정권이 DJ 정권으로 바뀌기 1개월 전에 나왔다. 최종 결론은 ‘사업 타당성 없음’이었다. 그러나 이 후보와 대구시처럼 경부운하 건설에 열을 올린 주체들은 이 보고서가 나온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는 어수선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수자원공사가 이 보고서를 국회도서관과 관련 부서에만 보냈을 뿐 이 후보와 운하추진위 결성 서명 의원들, 심지어 이 연구에 동참했다고 주장하는 토목공학자나 경제학자에게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가 경부운하를 지지해온 DJ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에 서둘러 조사보고서를 발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수자원공사 “사업 타당성 전혀 없다”
수자원공사는 경부운하와 관련된 용역연구를 진행하면서 세종연구원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충주댐과 충주호를 지나 월악산 국립공원을 터널(20.5km)로 관통하는 세종연구원 안을 버리고 월악산 국립공원과 문경새재 도립공원을 서쪽으로 멀찌감치 벗어난 지역에 수로 터널(5.3km)을 만들기로 한 것. 이렇게 되면 산을 관통하는 길이는 세종연구원 안보다 15km가 단축되지만 터널의 위치가 해발 120m에서 210m로 높아지고, 자연하천이 아닌 인공수로를 35km 이상 만들어야 한다.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세종연구원 안보다 당시 시세로 4500억원이 더 많았다.
댐도 하나 더 늘어나 16개의 댐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배가 드나드는 갑문도 13개에서 17개로 늘어났다. 갑문 1개당 배가 통과하는 시간은 45분으로, 이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바지선의 운항시간은 60.6시간으로 늘게 된다. 수자원공사는 보고서에서 “세종연구원 안은 구간이 길어 전 공정에 지연을 초래하고 이에 따라 수익감소와 금융비용이 증가한다. 터널 구간이 길면 환기문제와 비상시 대책이 어려워진다. 더욱이 높이 97.5m의 충주댐에 배가 들어가려면 댐 본체부에 8개의 갑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댐 안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수자원공사 안은 충주호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터널 인근 지역에 3개의 댐을 더 만들어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세종연구원 안대로 하면 충주호에서 터널수로를 통해 낙동강 상류로 물을 끌어당겨 쓰면 되지만 수자원공사 안은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댐을 더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 운하 건설시 따르는 수몰지역민의 민원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세종연구원과 수자원공사의 용역보고서는 기본 전제가 달라 공사시기, 규모, 총공사비,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비교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 수자원공사 안은 세종연구원 안보다 총공사비도 2000억원가량 늘었고, 경제성 분석에서도 편익 대 비용의 값을 가리키는 수익성 지수(B/C 비율)가 큰 차이를 보인다.
수익성 지수 1 이상일 때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데, 세종연구원 안은 분석기간 50년을 기준(할인율 10% 적용)으로 5.44가 나온 반면, 수자원공사는 0.244에 불과했다. 수자원공사는 “50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경부운하의 사업 타당성은 ‘전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수자원공사는 보고서에서 경부운하로 옮길 수 있는 화물이 제한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또 국내 기술로는 터널 공사와 갑문 공사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내륙운하보다 연안운하가 바람직”
“경부축의 화물은 대부분 단위당 가치가 높은 제품이어서 주운을 이용할 수 있는 화물의 규모와 종류는 매우 제한적이다. 외국의 사례를 고려할 때 운하는 단위당 가치가 높지 않은 대량화물 수송에만 적합하며 이에 걸맞은 화물은 경부축 총 화물의 3.3%에 불과하다. 또 운하는 고속도로, 철도 등에 비해 운항시간이 길어 비교 열위에 있는 수송수단이며, 수로 터널 등 인공 연결구간은 지나치게 길고 표고차가 매우 커 많은 갑문을 건설하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해외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등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된다. 더욱이 안개와 결빙 기간이 길어 선박운항 불가능일이 연 90일에 달한다. 내륙운하보다는 바닷가의 각 항구를 이용하는 연안운하를 개발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환경적으로는 비교적 객관적인 자세를 보이려 노력한 측면도 보인다. 수자원공사는 “경부운하로 인한 수질 오염, 일조량 감소, 생태계 교란 등 부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에너지 절약, 대기오염과 소음공해 감소, 교통사고 위험 감소 등 긍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또 “경부운하로 인해 연간 1억3816만갤런의 석유를 절감할 수 있으며 하루 5t 화물트럭 5165대가 배출하는 매연이 감소하고 2011년을 기준으로 매일 3944대의 화물트럭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개선 편익은 전체적인 경제적 타당성 분석에 반영되지 않았다. 반면 세종연구원은 올 초 만들어진 경부운하 타당성 분석 자료(비공개 문서)에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대기오염 감소로 매년 758억원(2011년 기준), 소음 감소로 367억원의 효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를 수익성 지수 분석에 반영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운하로 인해 일정 정도의 수질 악화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주운댐이 건설되면 운하는 댐과 댐을 연결하는 저수지로 봐야 한다. 즉 물의 흐름이 없는 호소로 간주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부영양화가 진행돼 투명도가 떨어지고 심수층의 용존산소가 감소하면서 수중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모든 생물은 유속이 느린 호소(湖沼) 생태계에 적합한 형태로 바뀐다. 또 터널이 생기면 생태계가 단절되고 교란 현상이 일어나며 외래어종의 급속한 증식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주운댐은 안개를 발생시켜 일조량과 일조시간의 감소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인접 농경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는 그 대안을 내놓았다. 운하를 생태공학적으로 만들면 수질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 즉,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환경오염은 막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더욱이 수자원공사는 보고서에서 “공로(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등) 화물이 주운으로 전가되어 수송되면 오염비용이 감소한다. 2011년부터는 매년 5300억원 이상의 오염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수질오염을 그대로 두더라도 운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상쇄하면 환경 차원에서도 운하를 만드는 게 이익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다양한 분석을 담은 이 보고서는 어떤 영문인지 8년이 지난 현재, 모든 조건이 변했지만 이 후보의 경부운하 안을 비판하는 최대의 무기이자 바이블로 이용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필우 의원 등은 9월27일 이 보고서를 근거로 “이 후보의 경부운하안이 경제성이 전혀 없다”는 자료를 냈다. 그 내용은 보고서에서 부정적인 내용만 따로 정리한 수준이었다.
“용역주체 의지 반영됐다”
그렇다면 수자원공사의 보고서는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일까. 이 보고서의 결론에는 수자원공사, 나아가 경부운하에 반대하는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토개발원이 작성해 수자원공사에 납품한 최종보고서의 앞머리를 보면 참여 연구진의 이름과 소속을 적시해놓았는데, 그 인원이 45명에 이른다. 이들 중 국토개발원의 자체 연구 인력과 그들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할 개연성이 있는 업체, 정부 산하 연구소 연구원, 공무원을 제외한 대학 교수는 16명. 자문위원으로 등록된 이들 교수진을 취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대부분의 교수는 최종보고서의 제목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이런 용역연구를 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 이들은 자문위원으로 등록만 됐을 뿐 용역연구에 참여한 사실은 없었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수자원공사와는 정 반대 의견을 개진했던 세종연구원 소속 연구원 4명도 들어 있었다. 세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국토연구원에서 불러 회의를 한 적은 있지만 그것으로 연구에 참여했다거나 자문에 응했다고 이름을 올리는 것은 곤란하다. 보고서에 이름이 오른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수자원공사에 항의했지만 삭제되지 않았다. 최종보고서 책자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토목공학과 이길성 교수는 “개인적으로 경부운하엔 반대하지만 그런 회의에 참가한 기억도 없고 책도 받아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조원철 교수는 “회의에 참가한 적도 없고, 보고서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보고서의 이러저러한 내용을 보니 이 사람들, 정말 큰일 낼 사람들이다. 특히 운하를 만들기 위해 해외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부분은 터무니없다. 분명 연구진 중에 외국 회사 관련자가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수자원공사 최종 보고서에는 네덜란드의 한 토목회사가 ‘국외자문단’이라는 명목으로 올라 있다.
“토목판에서 용역주체의 의지대로 용역연구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인가. 회의에 자신들과 친한 교수 몇 명 불러놓고 한두 번 대화를 나눈 뒤 연구위원이나 자문위원으로 슬쩍 이름을 집어넣는 것도 관행이다. 그 후에 자기네 입맛대로 용역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경부운하 용역연구 자문에 응하거나 참여한 적이 없다.”
최종보고서에 자문위원으로 오른 한 대학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용역에 연구원으로 참여한 국토연구원 박태선 책임연구원은 “그들은 분명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우리는 회의 참석을 ‘자문’에 응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의견을 가졌는가와 관계없이 용역 보고서에는 그것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에게 “발행된 지 8년 된 이 보고서가 현 시점에서 경부운하의 타당성을 논하는 데 유용한가”라고 물으니 그는 “변수가 변하면 결론도 바뀔 수 있다. 전제가 바뀌는데 어떻게 똑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가”라고 했다.
코끼리 다리 만지기
하지만 경부운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데 대해 이명박 후보측은 “나쁠 것 없다”는 반응이다. 운하 건설 세부 계획을 밝히는 것도 꺼린다. 이 후보측 한 인사는 “이 후보가 구상하는 경부운하는 1995년 세종연구원이 발표한 경부운하와는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수로의 통과지점, 터널의 위치, 길이, 바지선의 유형, 댐 설치 방식, 갑문의 위치, 형식 등 경부운하의 구체적 사안은 현재로선 밝힐 수 없다. 내부적으로는 검토가 거의 끝났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공개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11년 전 세종연구원 안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사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한편, 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운하가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이 후보 주변에는 경부운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운하팀(운하연구회)이 꾸려져 있다. 국제정책연구원(GSI)과 안국포럼을 포함해 적어도 3개 그룹 이상의 조직에 걸친 ‘운하연구회’에는 건설업체 엔지니어와 각 대학의 토목공학, 환경공학, 경제학과 교수 100여 명이 포진해 있다. 이 후보측 김영우 정책보좌관은 “이들은 아무 대가 없이 이후보를 돕고 있다. 경부운하는 내부적으로는 설계도가 완성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이 전문가 그룹의 실체는 대통령선거의 뚜껑이 본격적으로 열릴 때쯤 공개될 예정이다.
‘이명박 운하’의 내용이 이렇듯 추상적이다보니 언론도 환경단체도 제대로 검증할 도리가 없다. 밑그림만 보고 완성품의 허와 실을 논하는 해프닝이 계속되는 실정이다. 운하의 설계도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효과만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다보니 ‘과연 운하건설이 가능한가’ ‘선거용 빈껍데기 공약(空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쌓일 수밖에 없다.
〈제3부〉 최초 공개 : ‘이명박 운하’의 실체
기자는 이 후보측에 ‘올바른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취지를 전달하고 경부운하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 후보측은 한사코 이를 거절하다 지금껏 여러 언론에 흘러나온 갖가지 설들을 부정하거나 확인하는 방식으로 경부운하의 개요를 설명했다. 이 후보측이 구상하는 경부운하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먼저 운하의 통과지점, 즉 노선에 대한 부분이다. 이 후보는 경부운하안의 골자는 ‘대부분의 구간은 자연하천을 그대로 이용하고, 강과 강을 잇는 수로터널의 앞뒤에 극히 짧은 거리의 인공수로를 만든다’는 것. 언론에 알려진 이 전 시장의 운하 노선안은 서울(김포대교, 신곡수중보)-구리-하남-팔당호(팔당댐, 이상 한강지역)-양평-여주-충주(이상 남한강 지역)-충주호(충주댐)-월악산 수로터널(국립공원지역)-문경 조령천-상주 영강-상주 낙동강-구미-대구-창녕-물금-부산 낙동강 하구언의 총 500.5km로 1996년 세종연구원이 제안한 것과 같다.
댐 없고, 충주호·국립공원 통과 안 해
대부분의 구간이 세종연구원 안과 일치하지만 이 후보측 노선안은 남한강 수계에 있어 충주댐과 충주호를 통과하지 않고, 충주호를 서쪽으로 비껴 충주 조정지댐(탄금호)과 달천을 따라 수로터널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 이는 수자원공사 안(달천, 쌍천을 통과해 인공수로를 길게 만드는 안)과 세종연구원 안의 중간노선으로 충주댐과 충주호를 통과하지는 않지만 충주호의 물을 도수로(導水路)로 쉽게 받을 수 있는 위치를 선택한 것이다. 이 전 시장측은 댐을 전혀 만들지 않거나 한 곳만 만들어 낙동강 상류 수로의 수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터널을 뚫는 위치도 다르다. 세종연구원 안처럼 월악산 국립공원에 수로터널을 뚫는 게 아니라 월악산을 서쪽으로 완전히 벗어난 충주 쪽의 박달산과 문경 쪽의 조령산 밑자락에 터널을 뚫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자원공사 안보다는 충주댐에 가깝지만 월악산 국립공원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이 후보의 정책 담당자는 “충주댐과 월악산은 난공사에 따른 위험부담이 크고 국립공원 파괴라는 비난에 맞닥뜨릴 수도 있어 조금 우회하더라도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충주 조정지댐과 조령산을 통과하는 방안을 택했다. 이렇게 해도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극히 일부분은 포함될 수밖에 없다. 공사비가 많이 들더라도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운하를 개발한다는 게 이 후보의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월악산 국립공원을 비껴 박달산과 조령산에 수로터널을 뚫게 되면 경부운하의 총연장은 530km가 된다. 남한강에서 바로 낙동강으로 연결되지 않고 충주 달천으로 우회하는데다 달천과 조령산 수로터널을 연결하는 데 극히 일부지만 인공수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 또 조령산 남쪽에 있는 문경 조령천과 그 아래쪽에 있는 상주 영강을 잇는 부분도 물길의 굽이가 워낙 심해 곳곳에 인공수로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후보측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인공수로는 10km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자원공사 안은 인공수로가 35.5km, 세종연구원 안은 22km인 것에 비해 인공수로가 짧아짐으로써 공사비도 줄이고 환경파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터널의 높이도 달라진다. 세종연구원 안은 해발 120∼141m에, 수자원공사 안은 해발 210m에 터널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이 후보측은 105m 높이에 터널을 만들 계획이다. 터널의 높이는 배의 왕래에 있어 운행시간, 기술적 문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수자원공사는 “총공사비가 늘고 기술적 부담이 따르는 공사이긴 하지만 터널 양쪽은 물론 각 댐에 ‘십 리프트(배를 엘리베이터에 실어 들어올리고 내리는 방식)’를 설치해 해발 차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이 후보는 15개의 갑문과 보를 설치해 물의 낙차를 조금씩 줄여가기로 했다. 배가 도크에 들어오면 갑문이 서서히 열리고 물의 높이가 같아지면 진행하는 방식이다.
공사비 17조원 정도
운하 건설에서 노선만큼 우선적으로 결정돼야 할 요소는 운하를 왕래하는 바지선의 규격이다. 그 규격에 따라 총 물동량과 수로의 폭이 결정되기 때문. 이는 운하의 물류 경제성과 총공사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 후보측이 공개한 바지선의 규격은 폭 11∼12m, 길이 110m에 2400t급. 이는 컨테이너 200개가량을 한번에 옮길 수 있는 규모로, 이를 1열2단으로 연결할 경우 한번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4800t으로 늘어난다. 또 구간에 따라서는 5000t급과 1만6200t급이 운행되기도 한다.
이 후보측은 자연하천 구간의 경우 수로의 평균 폭을 50m 정도로 할 예정이다. 조령산에 뚫을 터널 수로의 폭은 20m이지만 상행, 하행 터널(쌍굴)을 따로 만들어 양쪽의 수로 폭을 합치면 실질적으로 자연하천 구간의 수로 폭과 다를 바가 없다. 바지선 선폭이 11∼12m밖에 되지 않는데 수로의 폭을 이렇게 넓게 잡은 것은 충돌 사고를 방지하고 몸집이 큰 유람선이 왕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또 쌍방향 터널을 뚫음으로써 바지선의 대기시간이 크게 줄어 운행시간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다. 세종연구원 안은 터널의 폭을 14m(일방통행)로 정해 상행과 하행이 교차할 경우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 수자원공사는 수로 터널이 아니라 터널 내에 철도 선로를 부설해 그 위에 바지선을 얹은 후 특수대차(기관차)로 잡아당기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방식은 기관차가 경유를 연료로 사용할 경우 터널 내 매연과 배기 문제가 발생하고, 배를 선로 위에 올리는 데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약점이 있다. 이마저도 일방통행이다. 다만 이 후보 안의 문제는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
일부 지류 부분을 제외하고 한강과 낙동강의 강폭은 좁은 곳이 80m이고 넓은 곳은 2km를 넘는다. 따라서 수로 폭을 최소 50m로 잡은 것은 일부 지류 부분이나 인공수로 폭을 고려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다. 2400t급 바지선이 물에 잠기는 깊이인 흘수(물에 뜬 배의 선체가 물속에 잠기는 깊이)는 2.8m밖에 안 되지만 평균 수심을 6m로 잡은 것도 앞으로 바지선의 규모를 확장할 것과 대규모 유람선 왕래를 감안한 것이다.
이처럼 일정한 수량과 수심을 확보하려면 수량이 풍부한 충주호의 물을 터널수로를 통해 낙동강으로 흘려보내는 한편, 물을 항상 가둬두는 저수용 댐을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낙동강 상류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 이하로 전국 평균보다 300mm 정도 적어 늘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또 내린 비가 하천을 통해 바다로 빠져나가는 유출계수가 어느 곳보다 높다. 이 때문에 세종연구원과 수자원공사는 15∼16개의 댐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령산 수로터널과 상주시 영강 사이에 들어설 3개의 댐을 제외한 나머지 13개 댐은 이미 수자원공사의 장기 댐 건설 계획에 포함된 용수 공급용 댐으로, 운하와 관계없이 언젠가는 건립될 것들이다.
반면 이 후보측은 “댐은 전혀 필요치 않고, 저수용 보만 15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후보측은 “한강 상류와 낙동강 상류 각 지점에 보를 설치하면 수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댐 설치로 인한 수몰지역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터널을 쌍굴로 뚫는데다 연장도 길어지면서 총 공사비는 수자원공사 안과 세종연구원 안의 2배에 달하는 15조~20조원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전 시장측 추산이다.
〈제4부〉 ‘이명박 운하’ 현장 철저 검증
이 후보측이 구상하는 경부운하의 실현 가능성과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9월25일 경부운하 구간 답사에 나섰다. 출발지점은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김포대교 지점. 한강의 마지막 다리인 김포대교의 총 연장은 2.2km로, 한강 하류의 강폭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김포대교 아래 물 밑에는 신곡수중보가 있다.
한강 수중보의 비밀
1987년 만들어진 신곡수중보는 한쪽으로만 물이 흐르는 다른 보와 달리 아침, 저녁으로 물의 방향이 바뀐다. 신곡수중보가 만들어진 첫 번째 이유는 밀물 때 서해의 물이 노량진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한강에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강의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수중보가 없으면 한강에는 큰 유람선이 다니지 못한다. 물이 빠르게 서해 바다로 흘러내려가 일정한 수심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물의 유속을 줄임으로써 그곳에서 공업용수도 퍼낼 수 있다. 고기들이 다닐 수 있도록 어도(魚道)도 따로 만들어져 있다. 신곡수중보에는 최근까지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한 쇠그물이 쳐져 있었으나 언제인가 제거됐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 만일 한강을 따라 내려온 배가 서해로 나가려면 신곡수중보에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갑문이 설치돼야 할 것이다. 강 양옆에 배가 들어갈 수 있는 도크와 갑문을 만들면 배는 서해와 한강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김포대교에서 신평 인터체인지를 타고 자유로로 들어서면 강변북로와 이어진다. 강변남로의 명칭은 ‘올림픽대로’. 서울시민은 이 길을 단지 김포와 구리를 잇는 간선도로로 생각하겠지만 운하로 따지면 제방도로가 되는 셈이다. 폭이 넓은 구간에는 대부분 강변도로를 만드는 게 관행이다. 국가 소유의 하천이므로 따로 보상비가 들지 않아 도로 시공비용이 저렴하다. 이 후보측은 “지금은 아니지만 경부운하 제방에 강변도로 건설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서울과 부산 사이에 또 하나의 국도 내지는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얘기다.
경부운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환경정의’의 한 관계자는 “경부축에 이미 여러 개의 고속도로가 있는데 또 도로를 만든다는 것은 중복투자이며 또 하나의 환경파괴”라고 반박한다.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다 잠실대교에서 또 하나의 수중보를 만나게 된다. 물론 물 밑에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류로 흘러가는 유속을 이곳에서 한번 줄이고 신곡수중보에서 다시 한번 줄임으로써 물이 한꺼번에 바다로 쓸려내려가는 정도, 즉 유출계수를 낮춘다. 일정한 수심을 유지하므로 취수도 가능해졌다. 서울시민 중 일부는 이곳에서 취수한 물을 정수해 마신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최근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 양쪽을 막아 한강의 바닥을 드러내는 ‘한강판 모세의 기적’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잠실 수중보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두 막고 신곡수중보가 중간에 가둬진 물을 바다 쪽으로 내보내면 한강은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바닥을 드러낸 한강 위에 줄을 놓아 남사당패로 하여금 세계 최장의 줄타기 기네스 기록을 세우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수중 생태계의 파괴를 얼마나 줄이는가가 문제다.
경부운하가 만들어지려면 잠실수중보에도 갑문을 설치하거나 배만 다니는 우회 수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울-부산 40시간에 주파
강변북로는 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경기도 구리시를 지나 남양주시에서 6번 국도와 만나 팔당댐에 이른다. 시퍼렇게 깊은 수심과 1km가 넘는 강폭을 자랑하던 한강은 팔당댐 언저리에 다다라 수량이 급격하게 줄어 강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곳도 있다.
이런 곳은 집중적으로 준설해야 한다. 과연 이 많은 모래와 자갈을 어떻게 다 파낼 것인가. 깨끗한 모래와 자갈은 골재로 판다고 해도, 거기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인 오니(汚泥·더러운 흙)는 어떻게 할 것인가. 환경단체들은 준설을 하는 과정에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수질이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준설하면 가라앉아 있던 오염물질이 흩어지면서 강 전체가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 신항만을 건설하면서 나온 오니를 모아둔 곳에 모기와 같은 해충이 넘쳐나 경남 진해 근처의 몇 개 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부운하 전체로 보면 준설공사 구간은 총 237.5km. 거기서 나오는 오니를 다 모아놓으면 어지간한 산 하나를 이루게 된다. 이 후보측은 “오니를 건조, 압착해 재처리하는 시설은 국내에 얼마든지 있으며 또 오니를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도 많은데 왜 오니를 산처럼 모아놓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부산 신항만이 처리를 잘못한 데서 오히려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3급수 수준이던 울산 태화강도 준설을 통해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맑은 물로 되돌아왔다. 포항 형산강도 준설을 통해 은어가 돌아오는 하천으로 바뀔 만큼 준설 기술(드레인 에이징 공법)이 발전해 이제 수질을 오염시키지 않고 준설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배가 팔당댐을 넘어가려면 갑문이 필요하다. 팔당댐의 해발고도는 58m, 하지만 실제 강물과 팔당댐 안의 팔당호 물 높이 차이는 채 10m도 되지 않는다. 이는 갑문과 도크 시설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갑문을 통과하는 데 드는 시간이다. 수자원공사는 최종보고서에서 갑문 하나를 통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평균 45분으로 잡았다. 조령산을 뚫은 수로터널이 210m 높이에 있어 특수갑문(십 리프트 방식)을 통과하는 데 또 6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갑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현재 갑문 통과시간은 15분(미국 세인트루인스 운하는 7분)으로 줄었다고 한다. 여기에다 바지선의 속도도 1997∼98년 당시에는 시속 12km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시속 25km까지 낼 수 있다.
수자원공사의 계산대로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운하 운항시간은 전체 17개 갑문을 통과하는 데 11시간, 십 리프트 통과시간 6시간, 일반구간 운행시간 44시간을 합쳐 모두 61시간(평균 60.6시간)이 걸리지만, 이 후보측 안대로 계산하면 15개 갑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4시간과 총 530km의 일반운항 시간 22시간(시속 25km)을 합쳐 26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후보측은 “곡선구간과 수로터널, 보를 통과하는 데 항상 최대 속도를 낼 수 없고, 중간 경유지 정박시간 등을 고려해 전체 운항시간을 여유 있게 40시간으로 잡았다”고 밝혔다.
팔당댐을 넘어서면 드넓게 펼쳐진 팔당호가 나온다. 한강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팔당호에서 물을 받아 서해로 흘러간다. 홍수 때만 되면 양쪽 강에서 내려온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환경부와 경기도는 팔당호 준설을 시도했으나 “공사비가 1조원이나 들고, 그 효과도 미미하다”는 용역결과를 받았다. 팔당호는 그만큼 넓다.
안개와 결빙의 ‘숫자놀음’
오전 8시. 팔당호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시계(視界)가 10m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배가 다닐 수 있을까.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았다는 김종복(75)씨 부부를 만났다. 김씨는 “팔당호가 생기고(1972년) 난 후 얼마동안 건너편 남양주로 가려면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안개 때문에 배가 운항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매년 9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안개 끼는 날이 많지만 배가 서로 식별하지 못해 부딪칠 만큼 짙은 안개가 낀 적은 거의 없다”는 것. 그에게 팔당호가 배가 다니지 못할 만큼 얼어붙은 적이 있는지도 물었다. 바로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30여 년을 지켜봤지만 언저리는 얼어도 한복판이 얼어붙은 적은 한번도 없다.”
선박운항 일수는 운하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결정적 변수다. 한강과 낙동강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거나 강이 꽁꽁 어는 경우, 태풍과 폭우, 폭풍 등 기상특보가 발효되는 경우에는 바지선이 운항하지 못한다. 경부운하 반대론자들은 수자원공사의 최종보고서를 인용해 “선박운항 불가능일수가 90일이나 되는 운하는 운송수단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수자원공사는 최종보고서에서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의 기상청 자료를 인용해 한강이 결빙되는 기간이 1년 평균 120일, 낙동강은 93일이라고 밝혔다. 또 안개 일수는 한강이 평균 49일, 낙동강이 11일, 폭풍·호우·태풍에 의한 기상특보 발효 일수는 한강이 46일, 낙동강은 24일이라고 했다. 모두 합하면 선박운항이 불가능한 날은 한강이 215일, 낙동강은 128일이나 된다. 결빙과 안개, 기상특보가 겹치는 날을 고려하면 한강 180일, 낙동강 100일로 줄어든다. 그런데 수자원공사는 “선박의 운항이 가능할 정도의 결빙이나 안개도 있다”며 한강과 낙동강을 통틀어 선박 운항 불가능 기간을 약 90일로 봤다. 그러나 왜 90일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신동아’는 기상청에 의뢰해 수자원공사가 조사한 기간(1985∼95년) 이후인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의 기상상황을 알아봤다. 분석 결과, 연 평균 안개 일수는 한강이 35일, 낙동강이 11일, 결빙 기간은 한강이 14일, 낙동강은 1.8일, 기상특보 발효일수는 한강·낙동강 똑같이 21일이었다.
낙동강은 2000년의 18일을 제외하곤 한번도 결빙된 해가 없었다. 특히 안개, 결빙, 기상특보를 산술적으로 합쳐도 선박운항 불가능 일수는 한강 70일, 낙동강 33.8일이 나온다. 근거를 알 수 없는 계산이지만 수자원공사 방식으로 결빙과 안개, 기상특보가 겹치는 날을 빼고, 거기서 또 며칠을 빼면 실제 선박운항 불가능 일수는 20일도 채 되지 않을 듯하다.
‘연 90일 선박운항 불가능’?
연세대 토목공학과 조원철 교수는 “선박운항 불가능 일수가 90일에 이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강이 결빙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올 경우 전날부터 작은 모터보트로 물결을 일으키고 다니면 강은 절대 얼지 않는다. 강이 얼어 운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은 운하 선진국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안개에 대해서도 “코앞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상황이 아니면 관계없다. 운하 폭이 좁은 곳에서는 지시등을 켜는 등 안개에 대비한 시설을 제대로 갖추면 된다”고 말했다.
같은 기상청 자료인데도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 10년간 우리나라의 기상 상태가 급변하기라도 한 것일까. 확인 결과 수자원공사는 기상청의 결빙일수 자료를 잘못 인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자원공사는 한강과 낙동강 수면 자체의 결빙일수를 조사한 게 아니라 한강 인근 지역의 각 기상대(서울·충주기상대)와 낙동강 근처의 기상대(추풍령·대구·부산 기상대) 관측 결빙일수를 차용했다.
즉 기상대 내부에 고여 있는 물의 결빙일수를 기록한 것. 더욱이 충주와 대구, 추풍령은 겨울이 춥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러나 한강과 낙동강은 흐르는 물이니만큼 설사 기상대에 고여 있는 물이 꽁꽁 언다 해도 결빙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서울측후소와 충주측후소의 연간 결빙일수는 무려 110일에서 132일에 이르렀고, 부산·대구·추풍령 측후소의 10년 평균 결빙일수는 각각 60일, 89일, 121일이었다. 반면 흐르는 물 위에서 측정한 한강과 낙동강의 실제 결빙일수는 14일과 1.8일에 불과하다.
수자원공사와 국토개발원은 운하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통계를 왜 이렇듯 자의적으로 차용한 것일까. 기상청 관계자는 “한국수자원공사는 국가하천 곳곳에 관리소를 두고 있기에 굳이 기상청 자료를 이용할 필요도 없고, 더욱이 측후소 내부의 결빙현상을 흐르는 강의 결빙일수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수자원공사의 한 직원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냐고 물었더니 “용역 연구자는 발주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 다시 용역을 맡기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정부 발주 용역의 특징은 결과를 정해놓고 한다는 것”이라며 이 직원의 말을 풀이해줬다.
팔당호에서 남한강을 거슬러 양평군 양평읍과 여주군 관내로 들어서면 조선시대 4대 나루였던 이포와 조포가 나온다. 1960년대까지 존재했던 이포와 조포의 강 양쪽으로 펼쳐지는 수려한 풍광에는 입이 절로 벌어진다. 지명 뒤에 ‘원(院)’이 들어가면 조선시대에 나라가 만든 숙박시설이 있었던 곳이고 ‘포(浦)’가 들어가면 나루가 있었던 곳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포나루’라고 하면 ‘서울역전(驛前) 앞’과 마찬가지로 틀린 표현이다.
조포는 조선시대 여주, 이천 지역의 진상미를 한양으로 올려보내는 조공나루였다. 그 지형은 선박이 머물고 가기에 딱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진상미를 보관하는 조창도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나루의 이름도 조포(租浦)다. 조포는 남한강의 절경이 한눈에 보이는 신륵사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여주군은 신륵사 관광 수요를 늘리기 위해 조포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라는 유람선을 매일 운행한다. 말 그대로 누런 포(黃布)를 돛에 달고 바람의 힘만으로 강을 오가던 옛날 배를 그대로 재현한 것. 석양 무렵 돛단배가 강 여울로 돌아오는 광경(연탄귀범·燕灘歸帆)은 신륵사에 울려퍼지는 저녁 종소리(신륵모종·神勒暮鍾)와 함께 ‘여주 8경’에 꼽힌다. 신륵사 주변에는 도자기 엑스포장(도예단지)도 있다.
“경부운하 관광편익 연 3322억원”
신륵사 아래 조포 인근에는 제철이 지났지만 수상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여전히 북적였다. 강변에서 식당을 하는 이송미(28)씨에게 “이곳에 운하를 만든다고 하는데 들어봤냐”고 물었더니 “듣긴 했는데 별로 반갑지가 않다”고 했다.
“운하라는 게 큰 배로 짐 옮기고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수상 레포츠를 할 수 없게 된다. 신륵사 찾는 손님만으로는 장사가 안 된다. 여기에 선착장이 생기고 황포돛배보다 훨씬 큰 유람선이 서울에서 손님을 가득 싣고 오면 또 몰라도. 선착장이 생긴다면 땅값도 많이 오를텐데….”
반면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차재경(경기도 관광협회 여주군지부 총무)씨는 “운하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며 “조선시대 유명한 나루였던 만큼 운하가 만들어지면 이곳에는 유람선 선착장과 화물 바지선 선착장이 함께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주군에는 도자기 엑스포와 신륵사, 세종왕릉, 효종릉, 명성황후 생가 등 관광거리가 많은데, 서울에서 이곳까지 유람선이 다닌다면 그보다 더 좋을 게 없다. 관광단지가 한강 유람권역으로 편입되면 ‘관광 여주’의 위상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수상 레포츠도 바지선이 다니는 노선을 피해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걸 걱정할 계제가 아니다.
이천에 현대 하이닉스, 진로, 오비 공장이 있는 만큼 화물 선착장이 생기면 고용창출 등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 여주 쌀도 그렇게 급하게 옮겨야 할 품목이 아니므로 배를 통해서 서울과 부산 각 지역으로 옮기면 물류비도 싸게 든다. 그리고 남한강은 심하게 오염돼 언젠가는 준설을 해야 하는데 마침 잘됐다. 큰물이 질 때마다 홍수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것도 해결되니 얼마나 좋은가. 다만 청계천 복원 때처럼 상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면 반대여론에 부딪힐 것이다.”
이 후보측은 경부운하 강변에 관광지를 조성해 대규모 민간자본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강변을 정비해 관광단지를 조성할 부지를 만들고 이에 대한 운영권을 팔거나 부지를 매각해 운하 건설비로 충당한다는 것. 이 전 시장측은 “수자원공사가 경제성을 검토하면서 관광편익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고 했다. 수자원공사의 최종보고서 어디에도 관광편익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다. 운하의 수익성 지수(B/C 비율)를 계산하는 데도 관광편익은 변수로 들어가 있지 않다.
세종대 경제학과 배기형 교수는 “경부운하가 만들어지면 2020년에는 한 해 3322억원의 관광편익이 발생할 전망이다. 경부운하 관광유람선은 일본의 오사카 내해와 중국의 황해까지 연결되는 광역 관광유람 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그는 또 “경부운하의 건설이 관광산업 활성화를 통해 끼치는 총생산 파급효과는 매년 1조4229억원, 총소득 파급효과는 2919억원, 총고용 파급효과는 3만5712명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충주댐 안전 위협하지 않는다”
남한강을 남동쪽으로 거슬러 상류지역인 충주시로 향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이 줄어 모래사장만 넓고, 물이 흐르는 폭은 넓지 않았다. 대규모 준설이 필요한 구간이다. 남한강 최상류를 향해 가다 도착한 곳은 충주 조정지댐과 탄금호. 충주호에서 충주댐을 거쳐 내려오는 남한강과 남한강 최상류 지류인 충주 달천, 쌍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마주치는 곳이다.
충주 조정지댐은 충주호에서 내려오는 물과 달천, 쌍천의 물을 받아 남한강으로 내려 보낼 수량을 조절하는 댐으로 발전기능도 하지만 주로 저수용 댐의 기능을 맡는다. 이 때문에 댐의 높이도 충주댐(97.5m)보다 턱없이 낮다(21m). 따라서 특수 갑문을 설치하지 않고 일반 갑문만으로도 배가 통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탄금호는 얼마 전까지 조정지댐 호수로 불렸지만 낚시꾼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면서 탄금호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정지댐 호수 인근에 신립 장군과 팔천 의병의 얼이 새겨진 탄금대가 있기 때문이다. 신라 악성(樂聖)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탄금대에 올라서니 조정지댐과 탄금호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탄금호의 내력을 밝힌 입석에는 “양호한 수질에 그윽한 풍경, 사람에 대한 사랑, 다양한 수서생물이 함께 있는 곳으로 철새들이 철따라 도래해 장관을 이루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댐이 생기기 전과 그 후 생태계의 양태는 많이 바뀌었지만 또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은 충북이 자랑하는 자연환경 명소 중 하나다. 환경론자들이 그렇게 반대하던 댐 구역이 이렇게 변한 것은 아니러니다.
세종연구원 안에는 이곳에서 운하가 충주댐으로 향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이 전 시장측 안에는 이곳에서 달천을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 조령을 향한다. 수자원공사의 운하는 달천에서 남한강의 다른 지류인 쌍천으로 물길을 갈아탄 후 속리산 국립공원 북동쪽 편에서 35.5km의 긴 인공수로(문경, 상주 방향)와 연결된다. 인공수로 중간에 5.3km의 터널을 뚫을 계획.
이 후보측은 “수자원공사 안을 따르면 운하가 조령을 서쪽으로 너무 멀리 비껴감으로써 인공수로를 35.5km나 만들어야 할뿐더러 터널도 길이는 짧지만 높이가 210m까지 올라가 십 리프트와 같은 특수 갑문을 만들어야 하는 위험부담이 따른다”며 “수자원공사가 십 리프트 설치와 관련해 ‘해외기술 도입’ 운운하며 경부운하 건설의 어려움을 얘기하지만 이는 지금 우리 기술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충주댐을 지나지 않고 조정지댐을 지나면 십 리프트와 같은 특수 갑문을 만들 필요도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 전 시장측 안은 충주댐을 통과하지 않음으로써 특수 갑문 같은, 충주댐의 안전에 영향을 줄 만한 공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박 스크루가 수질오염 막아”
충주시내를 관통하는 달천(달래강)은 말이 천(川)이지 강폭이 남한강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충북 괴산군으로 들어서면서 천은 좁아지고 수량도 급격하게 준다. 해발고도가 높아지는데다 최상류 지천의 지류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후보측은 이곳에 달천보를 만들어 수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위치는 충북 괴산군 지문리 조곡교 인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측은 “세종연구원이 댐 15개, 수자원공사가 댐 16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댐은 1개가 필요하거나 전혀 필요 없다. 수량 문제는 저수용 대형 보를 강 위에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달천에 보를 만들고 동진천, 음성천 등 지류의 물을 받아 보를 통해 유속을 저감시키면 수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환경단체들은 경부운하 곳곳에 댐이 들어설 것을 전제로 “운하는 댐과 댐을 연결하는 거대한 호소로 변해 부영양화 현상으로 인한 수질 악화를 피할 수 없다”고 예상한다. 수자원공사도 경부운하에 대한 환경분석에서 “운하는 거대한 호소로 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후보측은 “이 후보가 구상하는 보는 소형 댐의 기능을 하면서도 물을 가둬두지 않고 특수 기술을 사용해 물이 계속 흘러가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보 아래에 어떤 식으로든 구멍을 뚫어 물고기가 지나갈 수 있는 어도를 만드는 한편, 물이 계속 하류로 흐르게 하겠다는 것.
이 후보측이 수질오염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특수 준설기술말고도 다른 근거가 있다. 호소의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속이 느려짐으로써 수중 용존산소량이 감소하기 때문. 이 후보측은 “바지선과 각종 유람선이 교행하면서 엄청난 용존산소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해답은 바로 배 밑에 달린 스크루에 있다. 작은 어항에 산소를 일으키기 위해 소형 물레방아를 넣어두는 것처럼 거대한 선박의 스크루가 빠르게 돌아가면 여기에서 엄청난 양의 산소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달천 상류는 가을 갈수기라 물이 있는 곳의 폭이 20∼30m밖에 되지 않았지만 원래 강폭은 100m가 넘는다.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서 만난 한 주민은 “물이 많을 때는 강 언저리까지 차오른다”며 “이곳의 물이 지하수나 지천으로 흘러 나가지 않게 막으면 늘 물이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했다.
터널 공사의 핵, ‘갱도’
충북 괴산군 장연면의 방곡리 마을에 들어서면 박달산이 나온다. 이곳은 이 후보측이 수로터널을 계획하고 있는 장소.
박달산 인근 산에는 관개용수로 쓰이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가 수로터널에 물을 공급하는 보의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달산은 넓게 보면 월악산, 조령산, 백화산과 함께 조령으로 불리는 지역. 이 후보측은 박달산과 경북 문경시 마성면 모곡리 조령산 서쪽 능선 아래 해발 105m 지점을 양쪽에서 뚫어 수로터널을 낼 계획이다. 연장은 총 24km.
일부 언론 보도에는 지면에서부터 계산해 산 위 105m 지점에 터널을 뚫는 것으로 나왔지만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시장측 안의 터널높이는 바다로부터의 높이, 즉 해발고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박달산과 조령산은 산 아래 지면이 이미 바다로부터 100m 높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터널이 뚫리는 위치는 지면과 별 차이가 없다.
수자원공사는 후보측 안보다 더 서쪽에 있는 백화산 지역 해발 210m 높이에 5.3km 길이의 터널을 뚫는 것으로 계획했고, 세종연구원 안은 박달산에서 훨씬 동쪽에 위치한 충주호 부근 125∼140m 높이의 월악산 자락에 20.5km의 터널을 뚫기로 했다. 수자원공사가 배를 엘리베이터로 들어서 오르내리는 특수 갑문을 터널 출입구 양쪽에 설치하려고 했던 이유는 터널이 산 중턱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는 운하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면서 터널 공사기간이 너무 긴 것을 큰 마이너스 요소로 꼽았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공사비도 늘어나고 채산성도 떨어지는 까닭이다. 수자원공사는 최종보고서에서 “터널을 파고 인공수로를 만드는 데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터널 공사의 완료시점이 곧 경부운하 총 공사의 완료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