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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철호의 시시각각] 용산이라는 이름의 전차

복돌이-박 창 훈 2010. 8. 13. 11:55

[이철호의 시시각각] 용산이라는 이름의 전차

 

“사람들이 그랬어요. 먼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 ‘묘지(墓地)’로 갈아탄 뒤, ‘낙원’에서 내리라고요.” 그 유명한 비비언 리의 첫 대사다. 용산 역세권 개발을 보면서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를 떠올렸다. 이 사업은 온갖 욕망의 집합체다. 코레일은 땅장사를 했다. 땅값 8조원으로 부채 6조원을 한꺼번에 갚겠다는 계산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부이촌동까지 반(半)강제로 포함시켰다. ‘한강 르네상스’를 통해 자신의 ‘큰 꿈’을 이루려는 욕심이었다. 주민들의 관심은 평(3.3㎡)당 7000만원이 넘는 토지 보상비에 쏠렸다. 욕망을 실은 전차는 2006년 부동산 초호황기에 산뜻하게 출발했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31조원짜리 이 프로젝트가 지금 당도한 기착지(寄着地)가 묘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든 것을 헝클어 놓았다. “처음엔 평당 5000만원에 아파트가 다 분양될 줄 알았다. 지금은 평당 4000만원에 70~80%나 소화될지 자신 없다.” 건설회사 관계자는 불안한 표정이다. 분양 시점인 2012년은 제2기 신도시 입주가 절정에 달한다.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답이 안 나온다. 미래에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가 겁난다. 줄 서서 돈을 대겠다던 금융회사들은 씨가 말랐다. 담보나 지급보증 없이는 자금조달이 원천봉쇄됐다.

코레일은 5조원으로 잡았던 땅값이 8조원까지 치솟자 흥분했다. 내친김에 적자투성이 공항철도까지 1조2000억원을 들여 끌어안았다. 정부를 위한 선심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건설사들이 땅값을 3조원 깎아주든지 용적률을 높여 달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설계변경이라면 몰라도 땅값 할인은 공기업 계약사무규칙에도 선례가 없다. 더구나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법과 원칙의 경찰청장 출신 아닌가. 그렇다고 함부로 판을 깨기는 곤란하다. 국내 일류 기업들로 짜인 지금의 컨소시엄 말고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이런 판에 국토해양부 장관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지 심도 있게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해결사를 자처한 것이다. 판이 엎어지면 부동산 시장에 치명타다. 120조원에 달하는 다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들도 무너진다. 건설업계의 줄도산을 초래할 수도 있다. 더구나 코레일은 국토부 산하 공기업이다. 제때 땅값을 못 챙기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코레일의 빚을 갚아야 한다. 정부로선 3년째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주민들의 분노도 마음에 걸린다.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비장의 카드는 역세권 개발 특별법. 현재 도시개발법에 따라 진행되는 용산역 개발(평균 용적률 608%)의 용적률을 90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사태의 본질인 수익성 악화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입법예고 중인 이 법안의 맹점이다. 아뿔싸! 국토부가 깜빡하고 그동안 진행된 사업단계를 인정하는 경과조치(의제처리)를 빠뜨려버린 것이다. 12개 노선의 철도와 전철, KTX를 거느린 국내 최대 환승센터인 용산역 개발이 제외돼 버렸다.

전차가 종착역인 ‘낙원’에 닿으려면 두 개의 선택지가 남았다. 하나는 당장 특별법에 의제처리 조항을 삽입하는 것이다. 법률 개정 사안인 만큼 우리 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특별법에 따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방법이다. 그러려면 서부이촌동 2000여 명의 주민 동의를 다시 받아내야 한다. 용적률이 올라가는 만큼 주민들이 기존 보상비대로 순순히 응할지 의문이다. 불과 2년 전의 용산역 참사라는 끔찍한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

지금 용산역 개발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알박기’나 다름없다. 포기하자니 부작용이 겁난다. 다른 PF 사업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수익을 노리고 뛰어든 사업에 온 사회가 제도와 기준까지 바꿔가며 설거지해 주는 것도 한심하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도 마찬가지다. “여기가 분명히 낙원은 아니야. 그런데 또 무슨 수가 있겠어?” 벼랑 끝에 선 용산역 개발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이철호 논설위원

출처 : 동북아의허브-인천-
글쓴이 : 미네르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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