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과 매도청구소송
재건축·재개발사업은 통상 아파트를 짓기 위한 사업으로 장차 주택단지가 될 정비구역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수의 토지소유자들이 있다. 이들이 합심해서 조합을 결성하고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토지소유권은 자연스럽게 조합으로 넘어가지만, 토지소유자들 중에는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현재의 집을 헐고 아파트를 짓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특정한 사람이 조합장이 돼 사업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거나 정비구역내 토지소유권이 모두 확보되지 않으면 그 지상에 아파트를 짓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사업에 반대하는 자들의 토지소유권을 강제로 빼앗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도시정비법에 마련돼 있는 이러한 수단이 바로 재개발사업의 수용과 재건축사업의 매도청구소송인데, 이들이 도시정비법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수용’이라는 단어는 사업의 공공성이 매우 높은 ‘공익사업’에서만 인정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재개발사업에서는 인정됐지만, 재건축사업에서는 인정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됐다. 그래서 재건축과 재개발을 통합하는 도시정비법의 제정과정에서 재건축에도 수용권을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고 있던 매도청구소송을 인정하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전자의 방법을 취하면 재건축과 재개발에서 소유권박탈의 절차와 방식이 동일해지지만, 후자를 취하면 두 사업에서 소유권박탈의 절차와 법리가 달라진다. 결국 도시정비법은 재건축에 대해서는 매도청구소송을 두는 것을 만족하고 수용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재건축이 갖고 있는 공공성이 재개발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이 채택한 매도청구소송도 헌법상 ‘수용’에 해당하는 수용소송이라는 점에서, 도시정비법의 입법자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착각을 범한 것이다. 조합에 수용권을 줄 것인가 또는 매도청구권을 줄 것인가는 절차와 방식의 차이일 뿐 소유권을 강제로 박탈한다는 점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입법자의 의도대로라면 재건축조합은 재개발조합보다 소유권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야 하고, 수용을 당하는 반대조합원보다 매도청구를 당하는 소유자가 더 유리한 지위에 있어야 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상황은 이와 정반대다. 재개발사업은 사업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비로소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자에 대해 현금청산과 수용의 절차를 밟을 수 있고, 그조차도 행정청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수용재결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이에 비해 재건축의 매도청구는 조합만 설립되면 소송이 제기되므로 이른 시점부터 반대하는 소유자의 지위가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인다. 매도청구의 요건에 대한 법원의 전문성도 기대하기 어려워 소송의 승패도 동전 던지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매도청구권을 정해놓은 도시정비법은 전형적인 공법(公法)이지만, 실제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민사부이기 때문에 법의 취지를 잘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이렇게 소유권 박탈여부에 대해 합리적인 기대를 할 수 없는 매도청구제도를 도입한 것은 도시정비법의 커다란 오류다. 더구나 매도청구가 수용보다 토지소유자에게 더 불이익하게 작동하는 것은 법의 전체 취지에 명백하게 모순된다. 지금이라도 수용과 비교해 매도청구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지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일 좋기로는 매도청구제도를 폐지하고 재건축에도 수용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법률이 개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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