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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매수기)두번의 경매가 준 내집마련..

복돌이-박 창 훈 2009. 4. 20. 11:21

두번의 경매가 준 내집마련..

 

제목으로 본다면 경매를 통한 내집마련이라 여길수도 있지만 실은 전세자로 겪은
경매이야기와 그로인한 내집마련의 절실함을 얘기하고자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 올해 39세의 직장맘입니다.
1995년 당시 미혼이었던 저는 직장생활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느라 인천집에서 나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였지요.
1,500만원의 옥탑방. 처음갖는 나만의 공간인지라 설레기도 했지만, 밤늦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는데의 무서움도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했던거 같네요. 2년의 만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더 좋은곳으로 가기위한 나름대로의 자금을 마련하면서요..
주인아저씨가 건설업을 하셨는데 사업이 어려워 전세만기가 지났음에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층 단독주택에 주인집을 포함하여 여섯가구가 거주했는데 자금난을 겪던 주인이 담보대출을 풀로 받았으니 보러오는 사람도 없이 저를 포함한 세입자 모두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1년 넘는 시간이 흐르고 IMF가 오니 그 집은 결국 경매에 부쳐졌지요.
차분히 경매에 대해 알아갔고 1회부터 6회까지 석달에 한번씩 법정에 가서 경매를 지켜 보았지요.
계속되는 유찰..떨어지는 입찰가격.. 결국 세입자중 한명이 낙찰을 받았지요.
세입자중 유일하게 저만이 전세금 전부를 배당받았고 세명은 전세금의 반정도로
배당되었고, 가장 오래 살고 전세금이 가장 큰 세입자는 배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확정일자가 없었다는게 이유지요.
같은 지붕아래 살면서 정말 안타까웠어요.
돈 한푼 안받고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상황이 말이 아니었지요.

저는 전액 배당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세입자가 제 배당금에 이의제기를 한것입니다.
억울하다는 이유 만으로 소를 제기한 거죠. 경매계장 또한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은 처음이지만 일단 소를 제기했으니 거기에 맞서 법정싸움을 해야한다는군요..
세상 참 어렵고 무섭고 이해관계 앞에서는 모두가 적이 되더군요.
저는 매일같이 소를 제기한 세입자를 찾아갔고 부탁.. 설득.. 눈물.. 협박까지.. 정말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됩니다.

정말로 다시는 격고 싶지 않고 격어서도 안될 일이라 다짐하며 결혼하면 지하 방한칸이라도 내집을 마련하리라 다짐 다짐 했었구요..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 소를 취하해서 무사히 1500만원을 받았습니다.
통장입금을 보니 그렇게 눈물이 나더군요.
그냥 서럽고 이 상황이 싫었고 3년의 긴 시간들이 너무 힘겹게 여겨졌으니까요..

그후 민간 건설회사의 임대아파트로 들어가 맘편히 살다 2년후 분양을 받았어요.
원룸이라 큰 가치를 하지는 않았으나 분양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곳을 비워줘야 하니 큰 비용들지 않고 추가대금은 대출로 전환이 되어 부담은 없었답니다.
그 시기에 결혼을 했고 그 원룸은 매도를 하였지요.
1700만원의 수익이 생기니 신이났지요. 하지만 당시 집값이 많이 올라 내집마련하여 결혼생활을 하겠다는 저의 평소 생각과는 달리 전세로 시작되었답니다.

2005년 8월 31일 831대책이 발표되던날 집을 샀습니다.
역시 자금이 문제여서 33년된 15평 아파트를 샀지요.
낡은 아파트다 보니 재건축 당연히 기대했고, 두달후 안전진단통과하여 조합설립까지 잘 진행되었으나 세상사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현재까지도 소송이다 뭐다 해서 보류중에 있습니다.
전용면적 10평 공간에서 네식구 생활은 그야말로 힘들었어요.
갖고 있던 짐을 포기하지 않으니 방하나는 풀지도 않은 짐으로 가득했고 방하나를 중심으로 생활 했답니다.
그나마 아주 작은 거실은 난방이 되지 않아 4살 2살 아이들 키우기에는 너무 추워 한해 겨울을 지내곤 전세금 3000만원을 받고 세를 놓았지요.
혼자살기 딱 좋은 공간을 4명이 어찌 살았을까 싶네요.

받은 전세금 3000만원으로 어디로 갔을까요?
2006년 여름, 부동산의 소개로 대단지 아파트 22평 4년차 새아파트를 말그대로 파격적인 가격에 월세로 갔습니다.
전세시세 1억원 하는 물건을 2500만원에 25만원으로 들어갔지요. 고위험 고수익이라 했던가요?
이집은 집값의 80% 정도가 대출로 이뤄졌지만 젊은 부부가 별 무리없을거라 얘기했고 저희 계산상으로도 워낙 보증금이 낮으니 최악의 경우라도 손해율이 크지 않을거라 생각했지요.
물론 그집을 결정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구요.. 싼게 비지떡 운운하였지만 돈은 없고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은 욕심에 결정을 했답니다.

저의 우려와 고민대로 정말 일이 터졌습니다.
입주 한달만에 그 집이 경매가 결정되었어요. 말그대로 예정된 물건에 낚인셈이지요..
경매결정 통지서를 받은후 저희는 월세를 내지 않았답니다. 내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집주인과의 통화도 불가능했어요.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한 물건이라 경매 통지서 받은 정확히 1년만인 2007년 7월에 1회 입찰이 있었는데 2006년 여름 감정한 물건인지라 최초입찰가가 아주 저렴했지요.
아시다시피 2006년 가을에 집값이 폭등을 했기에 저희집은 말그대로 경쟁이 치열하게 경매에 부쳐졌답니다.
물론 저도 입찰했구요. 안타깝게 500만원 차이로 다른분이 낙찰이 되었구요.

나름 경매를 잘알고 있던터라 낙찰자와의 밀고당기기 없이 약간의 이사비를 받고 배당일 당일에 다른곳의 이사날짜를 잡았지요.
소액임차보증금이라 선순위에 우선하여 배당을 받기에 1600만원은 확보한 상황에서 일을 추진하였구요.
떼인 보증금은 시세대로 쳐서 그간 월세라 생각하니 맘이 훨 가벼웠답니다.

그런데 배당일을 얼마 앞두고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배당을 받지 못하는 채권자(2금융)가 저를 가장임차인 이라하여 저를 배당금에서 배제하겠다는 소를 제기했다네요.
담담했습니다. 못먹는감 찔러보는 그들인것을 알면서도..
법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라는 생각으로 나자신을 위로면서도 맘이 많이 상했습니다.
또 이런 일에 얽힌 제 자신에 대한 후회, 원망을 하면서요..

며칠에 한번씩 전화하여 협박하는 그들에겐 담담했지만 잘 될꺼라는 믿음으로 버틸수 있었지요.
배당일 전날밤.. 식구들 잠든 시간에, 물 한그릇 떠놓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종교는 없지만 잘 되기를 기도했지요. 기도 덕분인지 배당당일 무사히 배당을 받을수 있었고,
판결후 판사님께 여쭤보니 이의 제기가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그 판사님이 어찌나 예뻐보이던지요.
담당계장님도 제가 수차례 전화를 해서인지 기억을 하시며 “마음고생 많으셨죠” 하더군요.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 있다는데 정말 법정(?)에는 다시는 서고 싶지 않네요.
20대에 30대에 한번씩 경험한 경매는 저에게 많은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거지요. 이러한 경험조차도 제값을 톡톡히 치루니까요.

경매관련 카페에 가면 정말 경매에 경자도 모르는 분들이 사는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며 잠 못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답니다.
가끔 댓글로나마 그들을 위로하고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절차 하나하나를 말씀드리면 조금은 맘을 놓으십니다.
수강료 치룬 댓가를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두 번째의 경매는 제가 자만했던 댓가로, 나에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을꺼라는 안이함으로 격게된 것입니다.
전세물건을 보는 기본을 무시한점, 좀더 신중하지 못한점, 그로인해 1년 넘은 시간을 마음 한켠 불안해 했던건 다 제가 자처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처음 장만한 15평 아파트는 조합이 재개를 하면서 다시 진행될 듯 합니다. 4년동안 꾸준히 올라주기도 했구요.
기약없이 재건축만 바라볼 수 없어 작년 가을 집한채를 장만했답니다.
아이 학교 때문이라도 이리저리 돌아다닐수 없어 동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곳에 마련했지요.
강남,분당은 아니지만 직장 가깝고 아직 어린자식들에게 익숙한 지금의 사는곳이야 말로 최고인듯 해서요. 모두들 자기가 사는 동네가 최고지요.

모두들 내집마련 하시어 최고의 삶을 사시길 바랄게요.

출처 : 동북아의허브-인천-
글쓴이 : 복돌이(박창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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