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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소리가 들리는 빈티지 여행

복돌이-박 창 훈 2012. 9. 25. 19:03

가을 소리가 들리는 빈티지 여행

[국내여행 마니아들이 추천하는 가을 여행지 12선] ② 충남 서천

 

오곡백과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무엇을 해도 기분 좋은 적당한 기온의 계절이다. 가을이 오면 대한민국 산하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멀리 갈 필요없다. 짧아서 더욱 아쉽고, 귀하게 느껴지는 이 가을에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남겨보자. 여행 마니아들이 추천해 준 12곳 국내 여행지에서 무르익어 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껴본다. (편집자 주)

 

가을은 특별한 소리로 인사를 한다. 갈바람에 춤추는 갈대의 소리가 그렇다. ‘사사삭. 쉬이쉬이’하며 현악기의 소리를 내는 갈대. 뜨거웠던 지난 여름날의 피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하늘,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들녘, 국도변을 달리는 자동차 바람에 춤추는 화려한 들꽃들. 저마다 목청껏 소리 지르는 가을 합창에 여행길은 언제나 풍성하다. 깊은 숨을 가슴가득 담아보자. 그리곤 가을 소리 가득한 서천으로 가을 옷을 갈아입고 여행을 떠나보자.

 

충남 서천군 신성리 갈대밭은 가을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여행장소다.

가을이 인사하는 특별한 소리를 듣기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장소가 있을까? 충남 서천군 신성리 갈대밭은 가을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여행장소다.

 

시골장터의 정겨움을 느끼고 싶다면 1일, 6일을 챙기자

한산오일장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1일, 6일에 서는 장이다. 한산모시를 주로 취급하던 장이라서 새벽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산오일장은 점심때가 지나면 썰렁해진다. 한산오일장을 경유해서 서천여행을 계획한다면 장터구경을 오전 중에 마치는 게 좋다.

섞박지 김치 맛을 즐길 수 있는 삼거리 식당.

섞박지 김치 맛을 즐길 수 있는 삼거리 식당.

 

점심으로 임금님도 드셨다는 섞박지로 배를 든든히 채워보자. 섞박지는 1700년대부터 100여 년간 궁중은 물론 서민까지 즐겨 먹어온 한산을 대표하는 김치다. 일반김치와 달리 심심하게 절인 배추와 큼직하게 썰어 넣은 무, 미나리, 쪽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고 발효시켜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섞박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삼거리 식당(041-951-0167)과 오라리식당(041-951-0629), 향토회관(041-951-7668) 등이다.

신성리 갈대밭으로 향하는 길에 한산모시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우리 전통 천연섬유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관람·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전국 모시유통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한산의 명성에 걸맞게 전시관 역시 잘 꾸며져 있어 아이들 체험학습에 도움이 된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한산모시전수관과 시연공방, 토속관, 모시매기공방 등에는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의 신기한 눈빛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연공방에는 방연옥 선생과 나상덕 선생의 모시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한산모시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한산모시관.

한산모시 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한산모시관.

 

대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을에게 조용히 노크하는 신성리갈대밭

서천에서 가을을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은 신성리 갈대밭이다. 신성리 갈대밭은 금강 하구에 펼쳐져 있는 갈대밭으로, 너비가 200m에 이르고 길이는 1.5km에 이르는 대단위 면적이다. 제방도로에 올라서는 사람들마다 외마디 탄성이 터지는 이유도 그 규모 때문이다. 대단위 갈대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보니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쌍화점>, 드라마<추노> <자이언트> 등 수많은 작품들이 이곳을 주 무대로 촬영을 했었다.

우리나라 4대 갈대밭에 해당하는 신성리 갈대밭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서천을 찾는 사람들 특히 가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을 성지순례 하듯 발도장을 찍고 간다. 주중에는 인근 학교와 교육기관에서 체험학습을 겸한 자연학습장으로 견학을 오고, 주말에는 연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들어 명실공히 갈대밭 최고의 출사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연인들에게 더욱 안성맞춤인 서천 신성리 갈대밭.

연인들에게 더욱 안성맞춤인 서천 신성리 갈대밭.

 

어른 키보다 훨씬 큰 키를 자랑하는 갈대는 소리 없는 바람에 ‘사사삭, 쉬이쉬이’하고 옷을 입힌다. 그 바람소리에 맞잡은 연인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갈대밭 곳곳에서 연인들의 ‘나 잡아봐라’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미로처럼 이어진 갈대밭 길은 끊어지는 듯싶다가 이어지고 막혔다 싶다가 뻥하고 앞이 뚫렸다.

이곳을 찾는 발걸음은 가족과 연인들이 많다. 그중에서 반평생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모습은 가을하늘아래 온전히 축복을 누리는 가장 행복한 모습이다.

갈대밭 산책로에는 영화 테마길을 비롯한 유머길, 문학길 등 걷기에 지겹지 않도록 다양한 소재를 발굴해 걷는 재미를 더했다. 그중에서 이곳을 찾는 이라면 꼭 한번쯤 읽고 지나가는 곳이 시인 신경림의 시 <갈대> 시목(詩木)이다.

시인은 시에서 인간을 갈대에 비유했다. 그리고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며 인간 삶의 슬픔과 고뇌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갈대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갈꽃이 만개하는 10월 중순경부터다.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니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판교로의 빈티지 여행

그림자가 길어진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시골마을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잦아들 무렵 판교마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았음에도 빈티지한 마을의 풍경은 낯선 여행자에게 더욱 생경하게 다가온다.

 

서천 판교마을의 옛주조장.

서천 판교마을의 옛주조장.

 

서천 판교를 걷다보면 1960년대 영화 세트장을 걷는 기분이다. 50년 전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려 여행자가 철저히 이방인이 되는 순간을 맛볼 수 있다. 나이든 여행자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젊은 여행자에게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골목길과 옛 건물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유명관광지는 아니지만 빈티지한 분위기 때문에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시골마을에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사진모델로 인기가 좋은 건물은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을 머리에 올린 ‘역전정미소’다.

 

판교마을에서 가장 인기있는 적산가옥.

판교마을에서 가장 인기있는 적산가옥.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의 출생년도는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전형적인 적산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사진관과 쌀집을 함께 운영했었지만 지금은 문을 닫았다.

시골마을이라 젊은 현지인보다 간간히 길을 걷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시골마을 여행의 기술은 단순하다. 나이 많은 어르신을 만나면 무조건 목례와 함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된다. 젊은 사람들과 말을 섞을 기회가 없는 어른들은 밝게 인사하는 그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유명한 맛집은 25년 전통의 삼성식당(043-951-5579)과 수정냉면(043-951-5573)이 있다. 냉면 맛이 일품으로 서천에서 꽤나 알아주는 집이다.

 

판교마을에 해가 지면 또 다른 이야기가 샘솟을 것 같다.

판교마을에 해가 지면 또 다른 이야기가 샘솟을 것 같다.

 

● 여행정보
- 한산오일장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98-8, 전화(070-4103-1651), (www.gohansanjang.net)
- 한산모시관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60-1, 입장료(어른1,000원), 관람시간(오전10시부터 오후6시까지), 전화(043-951-4100) www.hansanmosi.kr
- 신성리갈대밭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일대 전화(043-950-4224)
- 판교마을 : 충남 서천군 판교면 저산리 308-8 판교역을 찾거나 판교면 현암리 18의 판교면사무소를 찾아가면 된다.
- 서천가을여행 당일추천코스 : 오전(한산모시시장) -> 점심식사(시장 내 섞박지) -> 한산모시전수관 관람 -> 신성리갈대밭 산책 -> 판교마을 -> 저녁식사(판교마을 냉면)

 

글·사진/임운석 여행작가(roomno1@naver.com)

 

임운석은 현재 캠핑카를 타고 ‘주5일 여행제’를 시행중인 여행작가다. 기업체 홍보팀에서 글과 사진을 시작했다. 아내에게 평생 여행만 하자고 약속한 뒤 15년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방송, 월간지, 기업체 사외보 등에 여행칼럼과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으며, (사)여행작가협회 여행작가,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여행의 로망, 캠핑카스토리> <경춘선 사계절여행(공저)> 등이며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www.bitbara.com)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