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돈 빌리고 이자 받는 날' 온다?
은행에 돈을 맡기고 수수료를 내거나 돈을 빌리고 이자를 받는 현실이 온다면 어떨까. 마이너스금리 때의 얘기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론적으론 가능한 일이다.
마이너스금리 시대가 오면 은행이 돈을 맡기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내라고 할 것이다. 고객이 이를 거절하면 현찰을 본인이 직접 보관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금고를 이용하든 마늘밭에 숨기든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하지만 도둑 맞을까봐 불안하다면 또는 마늘밭에 파묻은 돈을 남이 발견할까봐 걱정된다면 안전하게 돈을 맡길 필요성이 생긴다. 금융기관에 보석이나 귀중품, 중요한 서류 등을 맡기고 수수료를 내는 것처럼 생각하면 된다. 마이너스금리를 인위적으로 도입했을 때 시장원리에 따라 유지될 수도 있고 유지가 불가능해 플러스로 바뀔 수도 있다.
마이너스금리로 주택 가격이 급등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주택가. /사진제공=이건희
◆스웨덴, 마이너스금리 최초 도입
마이너스금리는 세계 최초로 스웨덴이 2009년 7월 도입해 2010년 10월까지 유지했다.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지급준비금 금리를 -0.25%로 인하한 것이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덴마크는 2012년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로 자금유입이 증가하자 자국통화인 크로네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2012년 7월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했다. 도입 초기 예치금리는 -0.20%였고 올 1월 -0.75%까지 인하했다가 지금은 -0.65%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존 금융정책을 관장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은 2014년 6월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했다. 유로권이 아닌 스웨덴에서는 마이너스금리를 시행하는 유로권으로부터 돈이 흘러 들어와 자국통화가치가 올라가는 것에 제동을 걸기 위해 그해 7월 다시 마이너스금리를 적용했으며 이미 이를 시행 중이던 덴마크는 마이너스 폭을 더욱 확대했다.
스위스도 2014년 12월 예치금리를 -0.25%로 인하해 현재 -0.75%까지 하향 조정했다. 올 2월엔 일본이 양적질적완화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아시아 최초로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시행, 초과지준금에 대해 -0.10%를 적용했다. 이로써 현재 마이너스금리를 채택한 국가는 19개의 유로화 사용국과 유로존이 아닌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일본 등 총 23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규모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1에 달한다.
마이너스금리 정책의 배경은 금리가 높을수록 돈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커져 시중에 실질자본의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반대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돈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커져 시중에 돈이 잘 돌아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다. 마이너스금리가 되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가져온 돈을 민간에 대출해줄 때 금리가 매우 낮아져 기업과 개인의 돈 사용처가 늘고 경기부양이 가능해진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97개국 중 지난해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국가는 19개국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마이너스금리 정책으로 시중에 자금수요가 증가한다면 물가상승률이 올라가면서 디플레이션이 억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실적으로는 ECB가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이후 디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미미했다. 약 2년 동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평균 0.1%에 불과했다. 마이너스금리가 -0.75%로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스위스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014년 0.01%에서 지난해 -1.1%로 오히려 떨어졌다. 돈의 가치를 마이너스로 하락시켜도 수요증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사진제공=이건희
◆캥거루족 속출, 북유럽 전통 바꿔
낮은 금리를 바탕으로 자금수요가 늘어난 곳도 있다. 부동산시장이다. 덴마크의 은행 중에는 3년 만기 부동산대출금리를 -0.01%로 책정한 곳이 있고, 고소득층의 변동성주택대출 일부에 -0.3% 금리를 적용하는 모기지전문회사도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대출이 늘면서 인구가 60만명이 안되는 코펜하겐의 부동산가격이 최근 3년 동안 평균 70% 가까이 상승했다. 코펜하겐의 부촌인 외스터브로 지역에서는 5년 만에 가격이 2~3배 이상 오른 고급주택도 있다. 리먼브라더스 위기 이전의 수준을 넘어 이제는 부동산 버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덴마크는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해 경제성장률이 회복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경제성장률이 2012~2013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가 마이너스금리 정책에 크로네화 강세가 누그러지면서 2014년 이후 1%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마이너스금리가 기업대출보다 부동산담보대출을 지나치게 활성화시키는 문제점을 낳았다. 마이너스금리로 경제가 완만히 회복되는 과정에 부동산 버블이 급격히 커져 덴마크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감도 대두됐다.
이에 따라 덴마크정부는 지난해 11월 주택대출 규제를 도입했다. 규제에는 주택가격의 5% 이상을 매입자가 계약금으로 내는 내용이 들어있다. 가파르게 오르던 주택가격 상승속도가 규제로 인해 둔화됐지만 상승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주택가격이 워낙 높게 올라간 코펜하겐에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집을 구하지 못하거나 임차료를 부담하기 힘들어져 부모 집에서 계속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들은 ‘캥거루족’으로 불린다. 한국처럼 부모가 자녀를 위해 주택을 사주는 사례도 늘었다.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북유럽의 전통을 마이너스금리가 바꾼 것이다.
스웨덴도 주택가격이 빠르게 올라 1년 전 유럽위원회가 스웨덴 주택가격이 최대 40%로 고평가됐다고 지적했다. 대출금리가 연 1% 아래로 내려오면서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주택가격이 소득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2003년 대비 3.4배로 늘었다. 실수요가 아니라 시세차익이나 임대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의 수요도 생겼다. 주택수요 증가에 따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외곽지역에도 주택건설이 활발해지면서 중산층 주거지로서 빌라촌이 여러 군데 들어섰다.
스웨덴정부는 부동산 버블을 우려해 신규대출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85%에서 70%로 낮췄다. 마이너스금리 정책이 시행 중인 유로권의 독일 또한 프랑크푸르트 등 대도시의 주택가격이 크게 올랐다.
사진제공=이건희
◆긍정과 부정사이… 시험대 올라
단기적으로 통화강세를 억제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데 마이너스금리가 효과를 나타내더라도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폐해에 대해선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덴마크의 가계부문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는 3배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수준에 도달했다.
훗날 금리가 상승 기조로 전환되는 시기가 온다면 가계대출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에 대비해 사전에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데이비드 호프먼 국제통화기금(IMF) 덴마크사무소장은 “덴마크의 부동산시장에 버블이 임박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이런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른 시기에 주택가격이 편치 않게 보일 수 있다”며 덴마크당국이 조기에 주택가격 상승에 대응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해 금융회사가 중앙은행에 돈을 쌓아두면 수수료를 내게 만들어 시중에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줄 것을 유도했지만 기업대출이 기대만큼 활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유럽 은행들이 ECB에 맡겨놓은 자금에 대해 지불한 보관료가 26억4000만 유로에 달했다.
일부 금융회사들은 보관료를 피하기 위해 중앙은행에서 돈을 찾아 따로 보관할 방법을 찾고 있다. 재보험사인 뮌헨리는 지난 3월부터 시험적으로 일부 돈을 금고에 보관하면서 보관비용을 가늠하고 있으며 독일의 코메르츠방크도 중앙은행에서 돈을 빼 금고에 보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금융회사나 고액자산가는 금고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평범한 일반인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마이너스금리가 심화되고 더 확산된다면 현금보관서비스업체가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또 현금을 쌓아두지 않도록 종이화폐가 사라지고 전자화폐를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밀이 보장되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비트코인 등의 전자화폐가 보편화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유럽 내에서는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현금을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ECB가 500유로짜리 고액권 퇴출 및 전자화폐 도입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최근 들어 마이너스금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만만찮게 등장했다. 마이너스금리가 도입된 국가를 보면 소비자 지출이 애초 예상만큼 늘지 않고 가계저축으로 돈을 모으기 힘들다는 생각에 부동산에만 관심이 높아졌다.
또 은행의 경우 마이너스금리로 생겨나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 은행에 예금이 들어오지 않고 마진 축소로 수익성도 떨어지면서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잭슨홀 연례경제심포지엄에서 중앙은행들은 마이너스금리 정책에 대해 반감을 보이며 통화정책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자인했다. 반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마이너스금리가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마이너스금리 정책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사이에서 어떻게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것인지 시험대에 올라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추석합본호(제452호·제4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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