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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길에서, 원효를 만나다·1]프롤로그 `원효 길`

복돌이-박 창 훈 2010. 9. 3. 10:40

[길에서, 원효를 만나다·1]프롤로그 '원효 길'

깨달음을 향해 천년을 거슬러 걷다

 

 

 
▲ 유난히 무더웠던 2010년 여름, 천년사찰로 유명한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녹음이 무성한 아름드리 나무사이로 스님들이 밀짚모자로 더위를 물리치며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1천300년이 지난 지금도 '원효 길'을, 그의 뜻을 좇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무릎을 꿇고 예불을 드리는 구도자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힘은 무엇일까. 길 저편으로 걸어가는 스님의 뒤태엔 부처님의 자비, 그 무한한 사랑, 인류 구원의 염원이 물씬 배어있는 듯해 우리를 이끈 힘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한다.
사진/조형기편집위원 hyungphoto@naver.com

[경인일보=전상천·민정주기자]'길'은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대를 연결해 주는 통로다. 수천년 역사의 '흔적'이 도처에 선명하게 남아 '길'을 당대에 다시 걷는 것은 과거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단초를 발견하거나 깨닫게 한다. 때문에 한국의 민족사적 대전환기인 2010년, 나와 우리 가정, 우리 민족이 가야할 길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이에 경인일보는 창간 50주년 기념 탐사기획 '길에서, 원효를 만나다'에서 민족의 새로운 미래의 길을 열었던 원효의 길을 10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길은 산을 만나면 재가, 물을 만나면 나루(津)가 된다.

사람은 길에서 산·강·바람 등 자연과 조우하며 역사를 만든다.

타인이 만든 길을 따라 걷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내기도 한다.

햇빛이 들지 않는 깊은 숲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다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거나 길에서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한 점의 바람에 실려 사라진다.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의 길'(Pilgrim Road to Santiago)로 견줘지고 있는 '원효길'.

석가가 길에서 태어났듯, 1천300여년 전 원효는 석가의 가르침이 넘친 불지촌(佛地村)인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한 골짜기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길에서 태어났다.

원효는 두 차례에 걸쳐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구도의 길'에 올랐다.

첫번째는 34살 때인 650년(진덕왕 4)에 8살 연하인 '의상'(義湘·625~702)과 함께 길을 떠났다가 고구려에서 첩자로 오인, 한 달간의 감옥살이로 실패하고 말았다.

10년 뒤인 661년(문무왕 1)에 원효는 660년 백제의 멸망으로 해로가 뚫리자 또다시 2차 유학시도했다. 늦은 나이인 45살의 그는 '참된 道'를 깨닫고자 유학길에 나선 것이다.

당시 원효와 평생 지기인 의상이 함께 걸은 길만 지금 어림잡아도 697㎞. 경주를 출발한 원효는 대구와 충주, 여주, 평택, 화성 등을 잇는 길 한복판에서 전쟁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민중'의 희로애락을 접하고, 문물의 변화 등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마침내 원효는 지금의 평택 수도사 혹은 화성 당성 인근에 도달해 득도(得道)했다. 부처에 대한 목마름, 道에 대한 갈증에 시달려 왔던 원효는 동굴 속에서 해골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참된 도를 깨우친 것이다. "마음이 있으면 여러 가지 일이 생기고, 마음이 없으면 일도 없어지니,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라는.

결국 원효는 의상과 이별을 고한 뒤 신라로 발길을 돌렸다. 삼계유심(三界唯心)의 도리를 깨우쳐 마음 저 밖에서, 당나라까지 가서 법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

원효는 중생을 향한 부처님의 한없는 자비를, 구원의 도를 알리기 위해 또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백년간 계속되는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지는 신라 백성을 구하기 위해 쉴 틈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원효가 지나간 길마다 설화와 전설이 피어나고, 민중을 끔찍이 사랑했던 그의 행적과 가르침, 사라져 버린 저서…, 그가 길 위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빚진 것을 모두 백성들에게 되돌려 주고 먼 길을 떠난 것이다.

'길에서 만난 원효'는 우리네 이웃을 한없이 사랑했던, 무애와 화쟁사상으로 전란에 빠져 있던 신라 백성을 구원키 위한 '길'이었다.

출처 : 동북아의허브-인천-
글쓴이 : 복돌이(박창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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