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부동산]① "대한민국은 청약중"…P보겠다는 대학생들
부동산 시장이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시작된 집값 폭등세는 이제 강북을 넘어 수도권까지 번지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선 미분양이 늘고 집값마저 하락세다. 정부 대책마저 어느 장단에 맞출지 몰라 오락가락하는 상황. 조선비즈가 지금의 부동산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지금 상황에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대학생 최주영(23)씨는 얼마 전 같은 과 친구로부터 부모님이 대학 입학 선물로 가입해준 청약통장으로 아파트 청약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최씨는 “무슨 돈이 있어서?”라고 되물었지만, “당첨돼서 프리미엄을 붙여 팔면 몇 달 만에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데, 청약통장이 있으면 같이 (청약 신청을) 하자”는 말에 이내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결국 친구와 함께 곧 강남에서 분양할 재건축 아파트에 청약하기로 했다. 당첨되면 계약금과 초기 중도금은 부모님께 빌려서 내고, 분양권은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는 대로 팔 생각이다.
서울에 사는 김모(44)씨는 지난 7월에 경기 하남 미사지구에서 공급된 ‘미사강변 호반 써밋플레이스’ 아파트에 청약하면서 청약통장 7개를 동원했다. 친척과 학교 선후배 등 지인들이 가진 청약통장을 수배해 청약 당첨을 노린 것이다. 결국 김씨는 평균 54.0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파트에 당첨됐다. 현재 이 분양권에는 1억원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 김씨는 조만간 전매로 되팔아 프리미엄을 나눠 가지기로 했다.
서울 강남 재건축이 불을 지핀 시장 열기가 기존 거래시장은 물론 청약 시장까지 번지고 있다. 고분양가 논란에도 강남 재건축 아파트 분양에는 청약자가 몰리고, 분양권에는 수천만원이 넘는 웃돈이 붙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인기 지역에서는 수백대 1이 넘는 기록적인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는 분양 단지가 속출하고 있으며, 이제 이런 청약 대기줄엔 직업도 나이도, 주택 소유 여부도 물을 것 없이 프리미엄을 노린 ‘불나방’들로 북적인다.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실수요자로 보기 어려운 다주택자에다 대학생들까지 아파트 청약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당첨 후 분양권을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려는 단기 투자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붙은 투심은 기존 아파트 시장에도 불을 지폈다. 청약 경쟁에서 탈락한 투자자들이 기존 재건축 아파트 단지로 눈을 돌리면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결국 정부는 집값이 급등하고 청약 과열이 빚어진 일부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고분양가에도 수백대1 청약 경쟁
올해 분양한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들은 비싸도 청약 결과는 좋았다. 올해 초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왔던 신반포자이는 평균 37.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포 한양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신반포자이는 일반 아파트(주상복합 제외)로는 역대 최고가인 3.3㎡당 평균 4290만원에 공급됐다.
올해 6월 청약을 받은 래미안 루체하임(일원 현대아파트 재건축)은 3.3㎡당 평균 3730만원의 분양가에도 평균 4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는 평균 분양가가 3.3㎡당 4137만원이었지만 8월 청약에서 10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달 초 분양한 아크로리버뷰(잠원동 신반포 5차 재건축)는 3.3㎡당 4194만원의 고분양가에도 306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강남발 청약 광풍은 비(非) 강남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7월 동작구 흑석동 흑석뉴타운 7구역에서 분양한 ‘아크로리버하임’은 89.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달 초 청약을 받은 마포구 망원동 ‘마포한강아이파크’와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은 각각 55대1, 22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 1년만에 프리미엄 2억원
청약 열풍이 식지 않는 것은 분양권에 붙는 프리미엄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분양권은 계약 후 6개월이 지나면 되팔 수 있다. 작년 말과 올해 초 청약에 나섰던 아파트 분양권들은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2억원의 웃돈이 붙었다.
지난 12일 분양권 전매제한이 풀린 ‘래미안 블레스티지’는 1억원 안팎의 웃돈이 붙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전용면적 99㎡의 경우 최대 2억원까지 웃돈이 붙어 매물로 나온다. 개포동 A공인 관계자는 “분양권 소유자들이 양도 차익의 55%를 양도소득세로 내는 것까지 감안한 가격에 매물을 내놓고 있다”며 “다만 어떤 정부 대책이 나올지 몰라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재건축 아파트 분양권이 ‘귀한 몸’이 되자 재건축 대상인 강남 아파트 가격도 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올해 7월 12억4500만원에 거래됐다가 8월에는 5500만원이 오른 13억원에 손바뀜이 일어났다. 서초구 신반포(한신3차) 아파트 전용 99㎡는 올해 5월 13억7000만원이던 시세가 8월 15억1000만원까지 올랐다.
◆ 투기 수요 차단 놓고 고민하는 정부
전문가들은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단타 위주의 투기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서울의 경우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해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건설사들이 분양 흥행을 위해 중도금 이자후불제나 계약금 분납제 등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청약 문턱을 낮춘 것도 투기 자본이 쉽게 청약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과열 조짐을 보여온 부동산 시장을 놓고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상황이 지역별로 엇갈리고 있어 마땅한 대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시장 전반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강남 등 일부 지역에 몰리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묘수’를 찾기 위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서민용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의 신규 공급을 연말까지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사실상 중단에 가까운 조치로 보는 해석도 있다. 지난 19일부터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는 주택 가격은 9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대출 한도는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춰졌다. 보금자리론을 빌릴 수 있는 자격도 부부 합산 소득이 연 6000만원 이하인 가구로 제한된다.
하지만 보금자리론 중단은 투기 수요가 집중된 강남 지역 재건축 시장을 가라앉힐 수 있는 수단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는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 연장, 청약 1순위 자격 강화, 투기과열지구 지정까지 다양한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선택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부동산 팀장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지역별로 접근하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세기 한국감정원 리서치센터장은 “실수요자들이 부동산 규제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숨통을 터주는 것도 대책 마련 과정에서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온혜선 기자 only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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