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좋은글,좋은정보

[스크랩] 옛날의 그 집 / 고 박경리씨의 마지막 시편

복돌이-박 창 훈 2008. 5. 10. 10:18

       

      옛날의 그 집

       

       

       

                            - 朴 景 利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년 4월 '현대문학' 발표

      박경리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긴 시편 <옛날의 그 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란 마지막 행이 턱, 걸린다.

      문학의 어머니 고이 영면하십시요.

      참담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립니다.  

                                    賢硯 痛拜.  05.  05.  戊子. 

       

                        

                         

       

          +++ 사랑하는 사람의 아침은 언제나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시작된다 +++

출처 : 동북아의허브-인천-
글쓴이 : 복돌이(박창훈) 원글보기
메모 :